말로만 하는 가짜 공감? 진짜 공감은 이것!
하루에도 몇 번씩 “~구나”를 연발하며 아이 마음을 읽으려 노력해도 통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는가? 입바른 소리 하는 육아 전문가를 욕하거나 아이에게 화를 폭발할지도 모른다. 혹은 ‘왜 나는 안 되는가’라고 생각하며 좌절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질문부터 던져보자. ‘ 대체 진짜 공감이란 게 뭘까’
“그랬구나”가 뻔한 말이 되는 순간
리얼 버라이어티 쇼 [무한도전]에서 ‘무한상사’ 편은 일명 레전드(최고의) 에피소드로 꼽힌다. 그중 백미는 멤버들이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갖자며 마주 보고 말끝마다 “그랬구나”를 남발하는 부분이다. 그간 쌓인 오해를 풀자며 시작했지만, 멤버들은 신발이 못마땅하다며 어린 코디네이터를 쥐 잡듯 하는 고약함, 후배들한테 얻어먹기만 하는 행동 등을 실컷 지적해놓고는 마지막에는 “그랬구나”라며 퉁친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상대방은 더 센 에피소드를 폭로하고는 “그랬구나. 이제 알겠다”며 가짜 공감으로 갚아준다. 멤버들이 폭로 뒤에 갑자기 다정한 말투로 “그랬구나”를 내뱉을 때의 어색함은 상황극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포인트였다.
언제부턴가 “그랬구나”는 대표적인 공감 표현 언어가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말’로 상대를 인정한다는 점을 전달해야 하고, 그 말 중 대표적인 것이 “~구나”가 된 것이다. 문제는 “그랬구나”라는 말로 공감을 억지로 포장하려 할 때다. 마음은 “에이, 그건 아니지”인데, 말로는 “그랬구나”라고 할 때, 혹은 공감보다 야단치는 게 더 적절할 때 건네는 “그랬구나”는 어색함 그 자체가 된다. 무엇보다 말뿐인 공감은 누구보다 아이가 먼저 알아차린다. 매번 마음과 말이 일치하기는 어렵지만 겉과 속이 다른 공감이 반복되면 아이가 엄마 말을 믿지 않고 눈치를 보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 “네 마음 내가 다 안다”는 태도를 보이거나 억지로 공감의 말을 전하려는 것보다 솔직히 엄마의 감정을 내보이는 게 아이의 공감 능력을 기르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분노 폭발이나 화풀이를 솔직함이라 포장하는 건 곤란하다.
쉽지 않는 공감, 깊은 자책에 빠지지 않기
사실 “그랬구나”라는 공감의 말은 죄가 없다. 누군가 자기가 속상하고 화나고 슬픈 이야기를 내놓았을 때 “그랬구나”는 가장 먼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이때는 억양이나 말투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작정하고 공감을 표현하려고 할 때는 여지없이 어색한 말투가 튀어나온다. 상담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 상담을 시작하면 공감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책에서 배운대로 “~구나”라는 말을 수차례 내뱉는다. 아이의 마음에 최선을 다해 공감하려는 노력 때문이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않고 공감의 강력한 힘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책과 TV에서 수많은 육아 정보를 접하는 요즘, 많은 엄마들은 이미 ‘감정 읽기’의 중요성을 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현실과 다른 얘기만 한다며 육아 전문가들을 탓할 때도 많을 것이다. 맞다. 책대로 하는 것, 그래서 효과를 보는 것은 정말 어렵다. 책대로 하는 것이 정답도 아니다(그러니 이 글에서도 공감되지 않는 부분은 잊어야 한다). 게다가 아이에게 공감하기란 훨씬 어렵다. 엄마는 이미 어린 시절을 잘 기억할 수 없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책대로 안 되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이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고, 엄마에게 맞지 않는 방법일 수도 있다. 잘 안 된다면 ‘나는 왜 이 모양인가’라고 자책하는 대신 자신에게 먼저 공감을 표현해보자. 야단맞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를 자꾸 야단치면 마음속의 ‘또 다른 나’는 잔뜩 화가 난다. 그리고 그 화풀이는 또다시 아이를 향할 때가 많다. 죄 없는 아이 두 번 잡지 말고, ‘아이고, 나 요즘 엄청 힘든가보다. 그래도 좀 힘내보자’라며 자기에게 먼저 공감의 말을 건네는 게 낫다.
공감 능력의 발달 과정
학자들마다 다르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은 3세가 되면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공감 능력을 발휘하기까지 단계들이 있다. 호프만이라는 학자는 4단계로 공감 발달을 설명했다.
생후 12개월
총체적 공감 단계. 아직 자기와 타인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사람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모방 능력을 발휘한다. 생후 5~8주 신생아에게 어른이 혀를 내밀거나 입 벌리는 모습을 보여주면 모방 행동을 보인다.
생후 12~18개월
자아 중심적 공감 단계. 타인의 고통에 자신도 고통을 느끼며 반응하지만, 위로할 때는 자기에게 도움이 되었던 방법으로 위로한다. 만일 배고파하는 사람이 있으면 젖병을 내미는 식이다.
생후 24~36개월
타인 감정에 대한 공감 단계. 단순한 상황에서 타인의 행복이나 슬픔을 알아차리고 공감 반응을 보인다. 타인이 힘들어하는 원인을 없애려고 애쓰기도 한다. 자기 앞에 펼쳐진 상황 외에 상상만으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시기.
생후 36개월 이후
타인의 일반적 상태에 대한 공감 단계. 자랄수록 다양한 상황이나 상상을 통해 공감 능력을 발휘한다.
진짜 공감을 위한 실천 육아법
ⓒ그림 [위대한 가족](천개의바람)
[STEP 1] 공감보다 제한이 더 필요할 때를 구분한다
공감은 원래 어려운 것이고, 자책하지 말자고 해서 아이에게 공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때 공감하고, 어떤 때 제한할지 엄마가 그 기준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이 기준을 세우는 게 가장 어렵다. 언제 아이 마음에 공감하고, 또 어떤 때 단호하게 제한해야 할지 결정할 때 중요한 것은 엄마의 주관이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이나 책의 기준들은 참고로 하되, 엄마의 주관이나 성향에 맞는 기준을 정하도록 한다. 몇 가지 고려해 볼 만한 점들을 짚어보자.
안전에 위협이 되는가?
누구에게든 안전의 원칙은 중요하지만, 특히 0~3세에는 안전하게 잘 클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육아의 우선이다. 안전이 우선일 때, “그랬구나”보다는 “안 돼”라는 말로 저지레를 막는다. 예를 들어 아이가 유리 재질의 음료병을 가지고 쌓기 놀이를 하겠다고 할 때, “그걸로 쌓기 놀이를 하고 싶구나. 근데 그거 위험해”라고 공감 어린 반응을 하기보다는 “유리병으로는 쌓기 놀이 하는 거 아니야. 이건 버리고, 다른 걸 찾자” 하고 병을 치워버려야 한다. 말로만 제한하지 말고 직접 행동에 옮겨야 한다.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줄 위험이 있나?
아이들은 공감능력이 아직 덜 발달해 다른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곤 한다. 특히 서로 비슷비슷한 공감 수준과 조절 능력을 지닌 또래 아이들끼리는 서로 자기 멋대로 하고 싶어 장난감을 무작정 뺏는다. 이럴 때 아이들은 “이 장난감 갖고 놀고 싶었구나”보다 “안 돼”라는 단호한 말과 훈육이 필요하다. “사이좋게 놀아야지”라는 타이름보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돼. 네가 잘못한 거야”라는 정확한 사실 전달이 공감 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다.
감정 폭발 상황인가?
아이가 한창 떼를 부리거나 감정이 폭발해 악 주는 그림책이다. 악을 쓸 때 엄마가 들려주는 공감의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다. 아이가 다치지 않게 보살피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떼쓰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공감 표현이 효과가 있지만, 폭발하는 상황에서 섣불리 말을 건네면 엄마를 때리거나 더 악을 쓰기도 한다.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는가?
큰소리 날 결말이 뻔히 보이는 일에는 공감적인 반응보다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게 낫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 차량이 올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이가 계속 딴짓을 할 때, 다정한 말투로 “지금 어린이집 가기 싫구나”라고 하기보다 단호한 태도로 등원 준비에 나서는 게 낫다.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게 해주지 않을 거면서 “아이고, 싫구나”를 반복하면 공감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STEP 2] 행동이 뒤따르는 공감을 전한다
“그랬구나”라는 말로는 부족하다면 무엇이 진짜 공감일까? 공감은 ‘들어가 느낀다’라는 의미다. 공감은 감정이입으로도 불린다. 한편으로는 ‘눈치’, ‘분위기 파악’이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특히 “척하면 착이지”라는 분위기에서는 마치 눈치가 부족한 사람이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눈치와 공감 능력은 같은 말이 아니다.
공감이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이해해서 하는 행동”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이해한다는 한마디 말로도 충분히 공감받았다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공감은 대부분 상대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하는 후속 행동을 이끌어낸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했다면 위로하고 싶어지고, 상대가 힘들어하면 도와주고 싶어지며, 지쳐 있으면 물 한 잔을 건네고 싶은 행동이 뒤따르는 것이다. 상대방은 이럴 때 공감받았다고 느낀다. 유래없는 찜통더위가 연일 계속된 이번 여름, 많은 사람들은 공감받지 못한 경험을 함께 했다. 누진제 걱정 때문에 에어컨을 틀지 못했던 사람들은 “많이 더우시죠? 누진제가 걱정이라고요. 압니다. 하지만 하루 3시간 합리적으로 에어컨을 틀면 걱정이 없습니다”라는 산업통상자원부의 태도에 답답함과 분노를 표현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말이나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말에서 멈춘 공감은 하나 마나인 정도를 넘어 분노를 일으키곤 한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만일 들어줄 수 없는 일이라면 “~하고 싶구나”라는 말을 반복하며 달래기보다는 “지금은 할 수 없어”라고 분명히 전한다. 대신 “너도 지금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어 속상하지. 나도 들어줄 수 없어서 아쉽다”라고 아이와 엄마의 마음을 서로의 입장에서 말하는 게 낫다.
[STEP 3] 역할 놀이는 가장 즐거운 공감 연습이다
최근에는 공감 훈련 프로그램이나 교육법들이 다양해졌다. 하지만 3세 전후 아이에게는 역할 놀이가 공감능력을 키우는 최적의 방법이다. 만일 아이의 공감 능력을 키워주고 싶다면 다른 놀이보다 역할 놀이의 비중을 늘리고 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놀이해보자.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때가 되면 역할놀이를 시작한다. 보통 만 3~4세 무렵 아이는 역할 놀이에 푹 빠지는데, 생후 24개월만 되어도 요리나 청소 등 가까운 사람의 일상을 따라 한다. 아이는 마치 배우처럼 다른 사람이나 동물, 영웅 등의 역할을 하면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아이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배우처럼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역지사지의 공감 능력을 키워나간다.
놀이치료를 하다 보면 역할 놀이에서 아이는 자신이 느끼는 갈등이나 심리적인 어려움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자신의 갈등을 표현하는 것뿐 아니라, 갈등 관계에 있는 상대의 역할을 하면서 아이 나름대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이와 역할 놀이를 할 때는 ‘공감 능력을 키워줘야지’, ‘사회성을 키워야지’ 하는 특정 목표를 갖고 노는 것보다 재미를 우선으로 한다. 자꾸 질문을 하거나 엄마가 어떤 답을 내놓으려고 하면 아이는 금세 흥미를 잃는다. 또 개방형 질문으로 “나는 이럴 때 무섭더라. 너는 어떠니”라고 물어 아이가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게 한다. 또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역할 놀이를 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엄마 아빠가 아이와 놀면서 각자의 역할에 대해 감정을 표현하는 기회를 늘린다.
[STEP 4] 비언어적인 공감 표현을 늘린다
“속상하겠다”, “화가 났구나”처럼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라고 하는 이유는 공감 능력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반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모를 때 그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주듯이 ‘화’, ‘슬픔’, ‘짜증’, ‘기쁨’, ‘신남’ 등 상황에 적절한 감정을 알려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감정을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어릴 때 부모에게 언제 공감받거나 이해받는다고 느꼈는지 떠올려보자.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라면 어떤 특정한 말이 떠오르는 경우가 더 많을지 모른다. 좀 더 어릴 때를 떠올리면 어떤가? 또렷하진 않지만 기억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공감 경험은 무엇일까? 슬퍼서 울 때 등을 토닥이던 손길, 기쁠 때 함께 펄쩍 뛰며 박수 치던 모습, 무서울 때 힘 있게 손을 잡아주던 느낌, 이런 비언어적인 경험이 훨씬 더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했구나”라는 감정 공감이 어색하고 입에 잘 붙지 않는다면 몸짓으로 공감을 표현해보자. 물론 둘 다 어색한 부모도 있을 것이다. 목표를 높게 잡지 말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보자.
일주일에 세 번은 아이 등 토닥이기, 세 번은 자신을 격려하기 식으로 각자 가능한 목표치를 잡아본다. 이것도 힘들다면 공감 능력에도 타고난 능력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자.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공감적이고 수용적이면 아이도 공감능력을 좀 더 쉽게 발달시킬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부모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면 아이가 자기감정을 잘 알아차리거나 표현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공감이 어려워진다. ‘내 탓이오’라고 자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행히 공감 능력은 타고나는 것뿐 아니라 노력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 부모 자신과 아이를 위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찐한 공감을 나눠보자.
<기사원문보기>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2876&contents_id=121673